웨슬리(제임스 맥어보이)는 한마디로 말해 찌질이고, 겁쟁이다.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 도넛에 중독된 뚱땡이 상사의 스테이플러 짓을 신경 안정제로 참아내며 "아임 쏘리"를 반복하고, 자신의 애인과 꺼리김없이 성애를 즐기는 동료에게 피임기구까지 계산해주며, 또 그런 애인과 한 침대에 누워 시끄러운 조잘거림을 전철소리로 위안삼아 참아내고 있다. 고작해야 구글 검색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며 존재감을 찾아보려 하는 그런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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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처럼 "난 21세기 최고의 쪼다이고, 내 운명은 소심한 샐러리맨야"라고 해석하고 단정지으려는 순간, 결코 그 올가미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으며, 그 현실에 얽매일 뿐이다. <원티드>에서 폭스(안젤리나 졸리)가 웨슬리에게 "왜 여기 왔는가?"묻는다. 이에 웨슬리가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라고 하는 순간, 소심한 찌질이 웨슬리는 킬러 웨슬리로 새롭게 재탄생된다. 이렇듯 내가 누구이며, 내 운명이 무엇이라 단정짓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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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웨슬리 얘기만은 아니다. 말미에 웨슬리는 관객들을 향해 "최근 당신을 무엇을 했는가"라고 묻는다. 나는 누구이며, 내 운명은 무엇인지를 되물어 보자. 폭스가 "우리의 결정이 세상을 바꿔"라고 했듯,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운명은 어쩌면 세상을 바꿀 큰 힘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이처럼, <원티드>는 어쩔 수 없이 시간에 이끌려 살아가며, 또 그것에 얽매여 갇혀사는 현대인에게 주는 현실 도피성 판타지다. 판타지는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리얼리티와 동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 사이에 초자연적인 요소들이 작용한다. 일직선으로 뻗어나가야 할 촐알이 휘어지거나 날아가는 총알을 총알로 맞춰버리는 신개념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유치한 설정을 숨가쁘게 진행되는 액션과 아우러져 최강의 액션 시퀀스를 탄생해 액션 로망을 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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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티드>는 살짝 <파이트 클럽> 냄새를 풍기기도 하지만, 그리 고약하진 않다. 좀 더 신나고, 좀 더 발랄하게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쾌락을 선사한다. 그저 영상에 눈과 몸을 맡긴 채 액션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그만이다. 다른 영화에선 보지 못한 파격적 비주얼과 놀라운 속도감이 믹스돼 스타일리쉬한 영화로 탄생했다. 역시, 아쉬운 점이라면 볼거리 집중한 탓인지 주제 전달방식이 다소 투박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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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맥어보이. <페넬로피>에선 그저 그런 배우로만 생각했다. 영화도 찌질했거니와 캐릭터 자체도 그리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원티드>에선 제대로다. 포스터 전면엔 안젤리나 졸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누가 뭐래도 <원티드>의 원톱은 제임스 맥어보이다. 그의 찌질이 연기는 단연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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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물론 졸리도 여전히 섹시하다. 하악~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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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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