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살처분 마리수가 700만 마리에 육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AI가 발생한 지난 2003년 겨울의 살처분 마리수 520만 마리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이렇게 확산될 때까지 정부에선 뭘 했는가.

이를 두고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애초 농림수산식품부가 가축 매몰처분 범위를 AI 발생 농장 500m 이내가 아닌 3km로 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물론 김성이 장관은 소의 10년 생명권을 주장하는 황당한 양반이기에 그다지 신뢰가 가진 않지만, 초기 대응에 실패한 측면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이명박의 실용주의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철학과 원칙이 없는 실용주의가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는지 이번 AI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2월 출범하면서 작은정부 원칙에 따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직원 34명을 인원감축했다. 대부분 현장에서 검역조사를 담당해야 하는 수의사무관, 수의연구관, 농업연구관, 환경연구관 등이었다. 과거에는 발생하지 않았던 AI가 거의 매년 발생하는 요즘 상황을 고려한다면 어처구니 없는 방침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무책임한 인원감축이 AI확산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을 쉽사리 예측할 수 있다.

검역원은 국내로 반입되는 모든 축산물의 검역과 검사를 맡고 있으며 광우병과 조류인플루엔자(AI) 같은 인수공통전염병을 정밀 진단하고 방역하는 정부기관이다. AI 및 광우병 발병에 대한 최종진단과 원인규명도 모두 검역원의 업무다.

즉, 문제는 이번 AI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다. 최근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에 따른 검역 강화를 위해 우리나라 검역관을 미국내 수출작업장에 상주시키겠다던 방침을 백지화 했다. 인력과 예산 문제 때문이다. 바로 작은정부를 지향하는 실용정부의 인력 감축 기조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실용은 아이러니하게도 또다른 비실용을 낳는다. 바로 AI 인한 살처분에 따른 농가 보상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는 아마도 곳곳에서 발생할 것이다. 이명박의 실용에 따라 예방차원의 인력과 예산은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복지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주객이 전도된 실용이 어디있겠는가. 작은정부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야 함에도 작은정부를 지향하기 위해서 국민 건강을 포기한 꼴이나 다름없다. 이게 바로 이명박이 말하는 실용이다. 아마도 이명박의 실용주의 주체는 국민이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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