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 중계를 유선방송을 통해 탐닉하던 고등학교 시절은 완전 축구에 미쳐있던 시기였다. 당시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아주대와 홍익대의 결승전에서 보게 되었다. 97년도 대학축구연맹전으로 기억한다. 2대1로 아주대가 지고 있던 후반 말끔하게 생긴 선수가 투입됐다. 그가 바로 안정환이었다. 그 후 모든 경기의 흐름은 안정환을 중심으로 바뀌게 되었고, 2골1도움의 활약으로 팀의 5대2 (오래된 기억이라 스코어가 정확한지 모르겠다.) 역전승을 만들어 냈다.


뒤늦게 알게 된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날 안정환은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마치고 막 귀국한 상황이었단 것이다. 선수의 체력적 부담과 피로를 염려해 투입하지 않았어야 했지만, 지고 있던 상황이라 어절 수 없이 투입했던 것인데, 그런 상황 속에서 안정환은 원맨쇼를 펼치며 경기를 뒤집어 놓은 것이었다.

그 때부터 안정환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김도훈, 최용수와 같이 체력 우위를 바탕으로 파워를 갖춘 공격수는 많았지만, 안정환같이 기술과 스피드를 갖춘 스타일은 한국에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좌우에서 크로스가 올라오지 않으면 골을 성공시키지 못하던 답답한 축구가 아니라, 수비수를 앞에 두고 돌파를 시도하고, 수비수를 등진 채 턴을 하고, 골 에어리어 안에서 패인팅을 쓰는 선수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안정환은 98월드컵에 나서지 못했고, 다소 늦은 나이에 국대대표 데뷔전을 치루게 됐다. 상비군에 뽑히긴 했었지만 실질적인 데뷔경기는 99년 코리아컵 멕시코전으로 기억한다. 98년 월드컵 패배 이후 벼르고 있던 터라 한국으로서는 굉장히 중요한 경기였다. 안정환을 가장 잘 활용한 경기로도 기억된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에 황선홍을 제외하곤 이렇다할 최전방 공격수가 없었기에 안정환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수비력이 좋은 유상철과 김남일이 뒤를 받쳐주면서 어느정도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월드컵 이후 황선홍이 은퇴한 자리를 대신할 만한 골게터가 나타나지 않자, 대표팀은 안정환을 아예 원톱 자리에 세우면서 안정환은 자신만의 색깔을 잃어 갔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안정환이 가장 뛸 수 있는 자리는 공격형 미드필드와 쉐도우 스트라이커라고 보는데 말이다. 2006년 월드컵 토코전의 후반 포메이션도 괜찮았다. 조재진을 원톱에 두고, 그 밑에 안정환 그리고 좌우에 박지성과 설기현을 배치한 포메이션이었다.


아무튼 전성기 시절 나를 매료시켰던 수비수를 등진 채 공을 받아서 턴을 하고, 한번 접어 수비수를 제친 후 반박자 빠르게 슈팅으로 골을 만들어 내던 안정환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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