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라따뚜이>에서 느껴지는 재미 또한,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단순히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그치지 않고, 성인이 봐도 전혀 유치하지 않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보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커져버린 내 머리와 굳어버린 관념들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구스토의 말처럼 생쥐 레미가 절대 미각, 후각을 갖고 인간 세계에서 요리를 해나가는 얘기로 구성되어 있다. 당연히 여러가지 난관이 레미를 기다리고 있고, 그 속에서 좌절도 맛보게 되지만 링귀니와의 우정과 진실된 믿음 속에서 결국 인정받는다는 얘기이다.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는 레미와 그의 능력을 진심으로 인정한 평론가처럼 나 역시 그렇게 봐야 했지만 그렇지를 못했다. '쥐=더럽다'는 공식 속에서 쥐가 요리한다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그 상황 속에서 웃음과 교훈은 느껴지지만 진정성있게 다가오지 못했다. 물론 극과 극에 있는 매개체를 연결함으로써 메시지의 효과를 극대화 하고자 했던 것은 알겠지만 난 그것을 뛰어넘지 못했다. 즉, <라따뚜이>에서 일어나는 인위적 상황을 즐기지 못했다. 나의 고정된 관념 속에 사로잡혀 불편한 심기를 보는 내내 드러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을 탓해야 하는건지, 제작자를 탓해야 하는건지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나에게 <라따뚜이>는 그렇게 유쾌하지 못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깨부시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낸 듯한 느낌이다. 실상에서도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볼까 걱정스럽다. 단지, 영화로만 끝났으면 좋겠다.
7.0점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구스토의 말처럼 생쥐 레미가 절대 미각, 후각을 갖고 인간 세계에서 요리를 해나가는 얘기로 구성되어 있다. 당연히 여러가지 난관이 레미를 기다리고 있고, 그 속에서 좌절도 맛보게 되지만 링귀니와의 우정과 진실된 믿음 속에서 결국 인정받는다는 얘기이다.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는 레미와 그의 능력을 진심으로 인정한 평론가처럼 나 역시 그렇게 봐야 했지만 그렇지를 못했다. '쥐=더럽다'는 공식 속에서 쥐가 요리한다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그 상황 속에서 웃음과 교훈은 느껴지지만 진정성있게 다가오지 못했다. 물론 극과 극에 있는 매개체를 연결함으로써 메시지의 효과를 극대화 하고자 했던 것은 알겠지만 난 그것을 뛰어넘지 못했다. 즉, <라따뚜이>에서 일어나는 인위적 상황을 즐기지 못했다. 나의 고정된 관념 속에 사로잡혀 불편한 심기를 보는 내내 드러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을 탓해야 하는건지, 제작자를 탓해야 하는건지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나에게 <라따뚜이>는 그렇게 유쾌하지 못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깨부시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낸 듯한 느낌이다. 실상에서도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볼까 걱정스럽다. 단지, 영화로만 끝났으면 좋겠다.
7.0점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