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어떠한 삶을 꿈꾸는가? 로제타(에밀리 드켄)는 그저 보통의 삶을 살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몹쓸 세상은 보통의 삶을 꿈꾸는 것조차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다. 열심히만 살면 되는 세상이 아닌게 되어 버린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절대적 빈곤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마저 피폐하게 만들어 버린다. <로제타>는 그런 영화이다.


로제타의 현 상황을 보면, 눈물겹도록 처절한 그녀의 행동이 조금은 이해 될 법도 하다. 아니,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로제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회 구성원 누구나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그러한 문제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아마도 누군가는 범죄의 유혹도 뿌리치지 못할 테니 말이다.

모든게 경제 탓이다. 로제타는 직장 내에서 주어진 일을 잘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수습기간이 지나자 짤리고 만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상황에서 로제타는 마음 편히 몸을 누윌 곳 하나 없는 트레일러 집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트레일러 집에서 사는 것이 부끄러워 언제나 뒷구멍 철조망 사이로 드나든다.

게다가 수도세를 못내 물을 끊길까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이고, 근처 호수에 유리병을 던져 물고기를 잡아 먹어야 하는, 그야말로 먹고사니즘이 절박한 처지의 로제타이다. 이런 그녀의 상황상 그녀가 직장에 그렇게 목을 메는 것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여기에 알콜에 중독된 그녀의 엄마, 아무리 말려도 술을 끊기는 커녕, 몸까지 팔아 술을 얻어마시는 꼴을 보고 있노라니, 피가 거꾸로 쏟아 오를 지경이다. 시설에 집어 넣으려 해도 무장적 버티고 드는 엄마를 당해낼 수 없다. 여기에 정체모르게 가끔씩 찾아오는 복통, 그 복통을 참아내는 수단이란 겨우 헤어 드라이기로 배를 달래주는 것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기 좋다고 하는 남자 리케(파브리지오 롱기온)가 눈에 들어올리 없다. 리케의 호의마저 불편한 로제타는 리케 덕분에 새 직장을 구하게 되지만, 얼마되지 않아 다시 짤리게 된다. 물론 그녀 탓은 아니다. 정부의 도움을 받으려고 해도, 실업수당이란 그녀보다 장기 근무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이고, 고용안정소는 그녀보다 장기 실업자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다. 젠장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리케보다 리케의 직장, 와플을 파는 그 일이 더 탐이 난다.


그리고 리케가 물에 빠지자, 순간 고민하게 되는 로제타, 니가 없으면 내가 그 일을 대신할 수 있을 텐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로제타는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고, 사고로 리케가 죽기를 바라기까지 한다. 결국, 이러한 극단의 결정은 아니지만, 리케가 뒤로 빼돌려 와플을 팔아온 것을 사장에 고자질 해 리케의 와플 파는 일을 뺏어버린 로제타. 그렇다고 그녀가 행복해 졌을까?

그럴리 없다. 결국 와플 파는 일을 스스로 그만두고, 이러한 처절한 삶 속에서 더 이상 버터낼 재간이 없었는지, 결국 로제타는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하고, 방안에 가스를 틀고 침대에 누워 담담히 죽음을 맞이하려는 순간, 가스가 떨어져 버리는,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상황은 더욱 로제타를 비참하게 만든다. 결국 죽기 위해 새로 가스통을 짊어지고 낑낑대며 집으로 돌아오는 로제타,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그녀 주위를 맴돌고 있는 리케. 가스통의 무게에 짓눌린 것인지, 삶의 무게에 짓눌린 것인지, 버티고 버텼던 로제타의 눈물과 울음이 터져나오고 만다.


<로제타>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롱테이크 기법으로 그녀의 삶을 뒤쫒아가며 담담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도, 갑갑할 만큼 밀착해서 화면 가득히 그녀를 가둬버린다. 그리고 처절한 모습 속에 불안한 심리상태를 핸드핼드 기법을 통해 드러낸다. 그래서일까,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모습들이 불편하고 눈물겹다. "나는 단지, 당신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이라구요." 로제타가 자신을 해고한 와플가게 사장에게 한 말이다. 로제타는 그저 평범한 보통의 삶을 바랬을 뿐이었다. <로제타>는 52회 칸느 영화제 황금 종려상과 여우주연상 수상작이다.

9.0점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