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시대인지라, 오해가 대세다. 이런 흐름은 영화판에서도 마찬가지다. <차우>가 괴수물이 아닌 코믹물이었듯, <해운대> 역시 기대했던 블록버스터급 재난물이 아닌, 그냥 가족애를 다룬 드라마였다. 윤제균 감독은 한국형 재난영화를 만든다고 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그가 말한 한국형이 무엇인지, 그 뚜렷한 형체를 찾아 낼 수 없었으며, 기대했던 재난의 맛 또한 없었다. 여태껏 윤제균 감독이 흥행해왔던 그 코드를 그대로 답습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운대>는 꽤 영리한 영화이다. 여태껏 쌓아온 경험치가 있었던 탓에 흥행코드를 제대로 읽고, 한국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놨기 때문이다. <해운대>를 재난영화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실 알맹이가 하나도 없게 되어 버린다. 쓰나미의 실체에 대한 관심도는 오직 김휘(박중훈)씬에서만 집중되고 있으며, 그 밖의 주류가 되는 인물들에선 그 낌새조차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쓰나미가 휩쓸어 버리는 그 모양새가 '뜬끔'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 이전의 흐름과의 간극 또한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해운대>에서 쓰나미가 갖는 의미란, 어설프게 얽혀있던 인물들 간의 오해와 갈등을 희석시키는 부산물에 불과한 정도이다. 사실, 왜 그들의 오해와 갈등이 쓰나미가 지난간 후에 그렇게 눈 녹듯이 사라져버린지에 대한 뚜렷한 대답도 없다. 그저 내부의 갈등이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의해 잠시나마 잊혀진 정도로만 보일 뿐이다. 물론, 거기엔 쓰나미로 인해 희생된 아픔이 잔존하고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애초에 갖고 있던 오해와 갈등의 실마리와는 별개이다.

아무튼 이렇게 알맹이없이 맹한 영화가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윤제균 감독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힘의 원천은 바로 특색있는 캐릭터에 있었다. 최만식(설경구)과 강연희(하지원)을 중심으로, 최형식(이민기), 김희미(강예원), 오동춘(김인권)의 독특한 매력이 영화내내 물씬 풍겨난다. 마치, 주객이 전도된 듯한 <해운대>의 쓰나미가 아닌, <해운대>에 사는 사람들의 얘기가 주구장창 이어지지만, 그 갈등과 대립이 그다지 첨예하지 않는 수준에서, 사람 냄새를 느끼게 해주고, 지루하지 않는 수준에서 마지막 쓰나미 한방까지 잘 이어오기 때문이다.

설경구의 다소 과장된 사투리와 하지원의 너무 어눌한 사투리가 살짝 거슬리긴 하지만, 그다지 크게 흐름을 해치지 않으며, 김인권을 필두로, 강예원과 이민기가 보여주는 코믹씬 역시 나름의 재치를 보여준다. CG 또한 그렇게 나쁘지 않기 때문에, 쓰나미 자체의 CG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면, 그냥 팝콘무비로써 그다지 실망스럽지 않는 수준이다

7.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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