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실비아(엘렌 페이지)와 제니(헤일리 맥파랜드)가 거트루드(캐서린 키너)의 집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면 좋았겠만, 그런 가정은 상황을 별로 이롭게 하지 못한다. 실비아가 아니었더라도 분명 다른 희생자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이기 때문이다. 유랑극단에서 일하는 실비아와 제니의 부모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수 없었기에 처음 보는 여인 거트루드 베니체프스키에게 아이를 맡긴다. 하지만, 거트루드는 이미 6명의 자녀를 키우느라 생활고에 찌달리고 있던 상황에서 그저 실비아와 제니때문에 보내질 그녀들의 양육비에 더 관심이 많았다.


시작은 양육비가 그저 하루 늦게 왔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녀들을 지하실로 불러 때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아무렇게 않게 실비아의 팔을 담배불로 지지는 일까지 서슴치 않았다. 이렇게 시작된 실비아를 향한 폭력은 폴라의 임신으로 인해 더욱 촉발된다. 계속되는 약물 복용 때문인지 큰 딸 폴라와 자신을 동일시 하더니, 폴라에게 일어나는 불행을 자신의 것처럼, 그리고 모든 것이 실비아로 인해 비롯된 것처럼, 실비아를 향한 학대로써 자신의 처지를 위안 삼는다. 그리고 아무런 죄의식없이 실비아를 향한 폭력을 자행한다.


그리고 거트루드를 비롯한 자녀들도 그 폭력에 침묵과 방관으로 동참한다. 급기야 아이들은 주변 친구들까지 불러와 그들을 실비아를 향한 폭행에 동참시킨다. 그들은 왜 그랬냐는 법정에서 질문에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폭력이 아이들에게까지 전이된 상황이면서, 거트루드가 실비아를 향해 저지르는 폭력 앞에 이미 굴복된 상황이었다. 아무리 판단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거트루드의 행동이 상식 이하란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런 저항없이 거트루드에 굴복하면서 가해자와 같은 위치에 서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에게까지 닥쳐올 만약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메리칸 크라임>은 영화 내적으로만 따져보면 그리 매력적인 영화는 아니다. 그저 실화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영화를 이끌고 가기 때문이다. 보통 같으면 영화니깐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장면에서도 실화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난 뒤라 현실적 상황과 맞닿아 있는 불쾌감과 답답함에 그저 잘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에 숨죽여 보게 된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질 때마다 터져나오는 탄식, 그리고 슬픔과 분노는 받아들기 힘든 실화의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8.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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