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심 리버풀과 첼시의 8강 경기처럼 박터지는 경기를 기대했건만, 새벽에 일어나는 수고스러움을 허탈하게 만들어 버리는 경기 내용이었다. 첼시는 캄프 누에서의 승리가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무승부를 위해 아예 대놓고 나인백을 썼다. 드록바만을 최전방에 배치한 채 모든 선수들이 하프라인 아래에 위치해 바르셀로나의 패스 길목만 차단했다. 경기 초반에 얻은 프리킥 찬스에서 에투가 헤딩으로 떨궈준 볼을 마르케스가 득점으로 연결했다면 경기 내용이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초반 찬스를 놓친 바르셀로나는 압도적인 볼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첼시가 의도한대로 끌려갈 수 밖에 없었다.

과르디올라에게 한수 가르치는 히딩크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어떠한 경기를 펼치지는 모르겠으나 1차전 만큼은 히딩크의 전술이 적중했다고 봐야 겠다. 간간히 돌파와 크로스를 허용하긴 했지만, 메시와 알베스는 보싱와의 수비에 고전하며, 다른 경기에서 보여줬던 판타스틱한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오히려 이바노비치가 마크했던 왼쪽의 앙리에게 좋은 찬스가 몇차례 왔는데, 결정적인 찬스에서 테리와 알렉스가 협력 수비로 도왔으며, 체흐 또한 최근 가장 좋은 선방을 선보이며 모든 슈팅을 막아냈다. 오히려 전반 말미에 마르케스의 백패스가 발데스에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드록바에게 볼이 끊기면서 위기를 자초하기도 했다. 다행히 발데스답지 않은 선방이 나오면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보싱와에 막혀 고전하는 메시


사실 경기 내적으로도 첼시의 의도대로 흘러간 경기였지만, 외적으로도 전혀 바르셀로나에 유리하지 못했다. 비가 와서인지 잔디는 물을 흠뻑 먹은 상태여서 상당히 미끄러웠다. 그래서 사비와 이니에스타의 패스가 세명의 공격수에서 제대로 연결되지 못했으며, 유난히 첼시 선수들에 비해 자주 넘어지는 모습을 연출했다. 특히 마르케스는 혼자 넘어지면서 푸욜과 교체 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주심으로 나선 볼프강 스타크은 반칙에 너무 관대했다. 웬만한 태클엔 휫슬조차 불지 않았으며, 결정적인 상황에서 고의로 끊는 반칙에도 카드를 너무 아꼈다. 게다가 부심마저 공격수와 수비수가 거의 일직선 상에 나온 패스는 모두 오프사이드로 판정해 버렸다. 2대1 패스를 주로 시도하며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는 바르셀로나로썬 모든 조건이 불리했다.

미칠듯이 선방하는 체흐


후반전도 경기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솔직히 약팀도 아니고 첼시같은 강팀이 대놓고 수비하겠다고 나서면 골넣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제공권에서 마저 첼시에 딸리는 바르셀로나는 무수히 많은 코너킥 찬스에서도 좀처럼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앙리를 잡아챈 보싱와의 반칙을 잡아주지 못한 심판이 야속할 뿐이었다. 바르셀로나는 보얀을 투입하며 분위기 반전에 나섰지만 보얀은 알베스의 크로스를 골문 위로 날려보내며 찬스를 무산시켰다. 첼시는 램파드 대신 벨레티를 투입하며 체력적인 부담을 덜어주었고, 경기는 그렇게 히딩크의 의도대로 0대0으로 끝나고 말았다.

치열했던 야야 투레와 미켈의 맞대결


하지만 의문이 남는 것이 과연 첼시가 이렇게까지 극도로 수비적인 전략으로 펼쳤어야 하는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수비가 그렇게 견고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맞뿔을 놔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상대 공격수도 미켈과 에시앙이 좀더 수비적으로 협력해준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고, 사비나 이니에스타가 있는 중원도 램파드나 발락이 그렇게 밀리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게다가 바르셀로나는 엘 클라시코 더비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1차전에 모든 것을 쏟아붓기 힘든 상황이었다. 차라리 골을 넣고 비겼더라면 나았을 것을 0대0으로 비긴 상황이라 오히려 첼시는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1대1이나 2대2로 비겨도 안되는, 꼭 이겨야 하는 상황인데, 이 상황이 꼭 첼시에게 유리한 상황만은 아닌 것 같다. 아, 마르케스의 부상과 푸욜의 경고누적은 첼시에게 웃어주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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