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을 통해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마린보이>를 극장에서 봤더라도 후회를 많이 할 뻔 했다. 그래도 케이블을 통해서나마 엔딩까지 시선을 끌었다는 것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하지만 왜 <마린보이> 실패했는지에 대해선 대충 견적이 나오는 것 같다. 뭐, 여러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등장인물들에 대한 색깔이 너무나 희미하다. 어설프게 정립된 캐릭터가 좀 탄력받아야 할 시기에 김을 빼버린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된 정도의 집약도가 현저히 떨어져 신뢰를 받기 힘든 수준에 머물고 만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나쁘지 않다. 전직 국가대표 수영선수 천수(김강우)가 도박 빚으로 인해 국제적인 마약 비즈니스의 대부 강사장(조재현)의 계획 아래 '마린보이'가 된다. 여기서 '마린보이'란 마약을 몸 안에 숨겨 바다 속을 헤엄쳐 운반하는 그런 존재를 말한다. 여기에 팜프파탈적인 매력을 발산해야 하는 임무를 띈 유리(박시연)가 엮이게 되고, 천수를 미끼로 강사장을 잡으려는 마약 단속반 김반장(이원종)까지 가세한다.

이쯤 되면 천수는 그야말로 죽을 상이 되어야 맞다. 그래서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적 긴박감을 관객으로 하여금 느낄 수 있게, 절박한 상황을 인물의 심리나 행동으로 표현했어야 했다. 하지만, 너무 낙천적인 성격 탓인지, 눈 앞에서 죽음을 목격했음에도 너무나 상황을 즐기는 듯한 쿨한 모습에 탄력을 받아야 할 시기에 힘이 떨어지고 만다. 게다가 마린보이의 임무 또한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되어 버리는 결과까지 초래버린다. 강사장에겐 살해 협박을, 김반장에겐 구속 협박을, 유리와는 치명적 사랑을, 그러면서도 바다 속에선 죽음의 사투를. 이런 구조가 되어야 하는데, 딱 봐도 쟤 안 죽겠네 하는 그림이 나오는 꼴이 됐다.


그리고 강사장 역시, 이름만 대부고, 목소리만 낮에 깔았다 뿐이지, 도대체가 그가 보여줬어야 할 위엄과 카리스마는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또 김반장이 엮이게 되는 과정에서 너무 수세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명색이 국제적으로 노는 보스인데, 김반장같은 상대에게 쩔쩔 매다니 말이다. 김반장의 사회적 지위를 높여주던지, 강사장을 좀 낮췄어야 했다. 그러면서 좀더 유리가 강사장을 벗어나야 할 직접적인 이유라던지, 겉으로 보이지 않는 사이코 패스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힘이 부족했다. 그리고 김반장도 너무 빨리 자신의 정체를 노출시켜 버렸다.

그리고 유리. 도대체 왜 나온지 모르겠다. 그녀가 이 사건에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약을 운반하는데 있어 기여를 하는 것도 아니고, 3명의 남자 사이에서 그들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는 그런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그냥 집어넣은 그런 어정쩡한 캐릭터가 되어 버렸다. 대개 이런 영화에서 나오니깐, <마린보이>에서도 하나 넣은 듯한 그런 느낌이다. 좀더 비중을 높여서 마약 거래에도 관여하고, 천수와 강사장, 그리고 김반장 사이에서 좀더 음란할 필요가 있었다. 그냥 단순히 벗으라는 얘기가 아니고 좀더 그들에게 치명적 유혹으로 가다갔어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초반의 판을 잘 짜놓고도, 중반이 넘어 가면서, 얘기가 산으로 가버린다. 도대체 멜로를 하자는 건지, 느와르를 하자는 건지, 액션을 하자는 건지, 나사가 빠진 듯한 말랑말랑한 영화로 변해 버린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대개 이런 식으로 얽혀 있는 영화들이 그렇듯이, 배신에 배신을 엮어 내고 싶었는지, 반전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관객이 이해 못할 허탈감에 빠트리고 만다. 결국 <마린보이>는 신선한 소재를 살리지 못하고, 시간만 떼우다, 신선함이 상해버린 결과만 초래했다.

6.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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