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치맨>에 대한 사전 이해가 없었지만, 그닥 나쁘지 않게 즐길 수 있었다. 히어로들의 멋지 활약상을 그린 영웅물도 좋지만, <왓치맨>같은 퀴퀴한 분위기의 냄새도 나름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왓치맨> 원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관객을 위한 위트 넘치는 오프닝 시퀀스도 좋았고, 코미디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스토리텔링 또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극명한 호불호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왓치맨>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은 그렇다 치더라도, 화면 상에 보여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탓에 한가지로 집중되기 힘든 구조이며, 종종 펼쳐지는 이해하기 힘든 난해함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눈요기로 좋긴 했지만 쓸데 없기 길게 나온 붕가씬이나 화성에서 노팬티로 블루 똘똘이를 노출한 정좌 자세의 닥터 맨하튼이 그랬다.


<왓치맨>은 현실적 시대에 가상적 요소를 더해 철학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Who watches the watchmen?" 슈퍼 히어로들의 행동은 과연 올바른 것인가? 그러한 가치 판단은 누가 하는 것인가? 선을 목적으로 한다면 어떠한 행위도 용서될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은 원작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보면 미국 스스로에 대한 자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초강대국이라 일컫는 미국은 스스로도 그렇고, 주변 국가에 행하는 영향력도 그렇고, 슈퍼 히어로 못지 않은 존재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매번 미국은 세계 평화를 주창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세계 평화가 과연 세계를 평화롭게 하는 것인지? 그러한 판단은 누구에 의해 행해지는 것인가? 이러한 미국의 행동은 누가 감시해야 하는 것인지? 라고 <왓치맨>을 통해 묻고 있다.

마지막 농담같은 진실 앞에, 사실 너무 커다란 주제 의식 속에 숨이 막혀 피부 깊숙이 다가오지 않지만, 각각의 캐릭터들은 관객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다. 과연 당신이라면? 닥터 맨해튼처럼 신에 가까운 초인간적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저 만들어진 평화에 동조할 것인가? 아니면 로어셰크처럼 철저히 정의와 진실을 쫒을 것인가? 하지만 <왓치맨>에 보여진 가장 미국다운 모습은 역시 오지맨디아스였다. 가장 똑똑하며 누구 못지 않게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신념과 가치만이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고,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위험한 생각에 사로 잡힌 그런 모습. 사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권력층에서 보여지는 모습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원작을 보고 싶게 했던 <왓치맨>이다.

7.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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