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트>는 특별한 기교나 장치없이 배우들의 명연기만으로도 관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영화이다. 한가지 주제의식 속에 두 인물의 대립을 통해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간다. 그렇다고 직접적인 강압을 통한 극적 효과를 노린 것도 아니다. 그저 언행 속에 녹아든 서로를 향한 견제와 감시만이 숨어 있다.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연기 앙상블에 관객은 그저 숨죽여 바라볼 뿐, 깊이 개입할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 이게 <다우트>가 가진 매력이다.
배경적인 요소가 종교이고 시대적 상황(1964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일치의 재건' 교령을 발표된 해이다.)도 무시할 수 없다보니, <다우트>를 보는 내내 성격 상 꼬아서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종교란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한 절대적인고 맹목적인 믿음에 기인한다. 그것의 존재를 진실로써 증명해 보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믿음에 대한 의심은 자체가 불순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알로이시스 수녀(메릴 스트립)의 행동은 단순히 보수적인 취향의 문제나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에 대한 성격적 차이에서 오는 거부감이 아닌 불확실한 심증에 대한 확신만으로 상대를 불신한 것 자체로 '일치의 재건' 교령과도 대치된다고 볼 수 있다.
<다우트>가 노골적으로 알로이시스 수녀를 불순적 요소로 지목함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다우트>는 결국에 무엇이 진실인지 여부에 대해선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히려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찼던 알로이시스 수녀의 심적 불안에 더 주목한다. 선입견에 의해 철저히 제한된 편협함은 결국 그녀의 마음 속에 의심과 불신만을 남겨주게 되며, 결국 자신조차도 자신의 의심이 맞는 것인지를 의심하게 된다. 이는 곧 스스로에 대한 자멸이고 파멸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다'는 플린 신부의 말처럼 종교 안에서나 밖에서나 편협함을 넘어 서로에 대한 차이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8.5점
배경적인 요소가 종교이고 시대적 상황(1964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일치의 재건' 교령을 발표된 해이다.)도 무시할 수 없다보니, <다우트>를 보는 내내 성격 상 꼬아서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종교란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한 절대적인고 맹목적인 믿음에 기인한다. 그것의 존재를 진실로써 증명해 보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믿음에 대한 의심은 자체가 불순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알로이시스 수녀(메릴 스트립)의 행동은 단순히 보수적인 취향의 문제나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에 대한 성격적 차이에서 오는 거부감이 아닌 불확실한 심증에 대한 확신만으로 상대를 불신한 것 자체로 '일치의 재건' 교령과도 대치된다고 볼 수 있다.
<다우트>가 노골적으로 알로이시스 수녀를 불순적 요소로 지목함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다우트>는 결국에 무엇이 진실인지 여부에 대해선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히려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찼던 알로이시스 수녀의 심적 불안에 더 주목한다. 선입견에 의해 철저히 제한된 편협함은 결국 그녀의 마음 속에 의심과 불신만을 남겨주게 되며, 결국 자신조차도 자신의 의심이 맞는 것인지를 의심하게 된다. 이는 곧 스스로에 대한 자멸이고 파멸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다'는 플린 신부의 말처럼 종교 안에서나 밖에서나 편협함을 넘어 서로에 대한 차이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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