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매일같이 총알을 한발 한발 채워넣으며 동료들을 어떠한 순서로 쏠지를 결정한다. 하지만 절대 실행에 옮기진 못한다. 그는 소심한 회사 내 왕따 밥 맥코넬(크리스찬 슬레이터)이니까. 점심시간엔 혼자 회사 밖으로 나가 건물을 보면서 버튼 하나에 건물 전체가 폭파되는 위험한 상상마저 한다. 그렇다고 밥 맥코넬이 그리 위험한 인물은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누구라면 한번쯤 해봤을 법한 상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소심한 밥 맥코넬도 딱 그 수준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총알에 채워넣다 마지막 총알을 떨어트리고 만다. 밥이 총알을 줍기 위해 책상 아래로 고개를 숙이는 순간 사무실 내에 총성이 울려퍼지고 이내 사무실은 아수라장이 된다. 밥의 동료 콜맨이다. 그가 먼저 밥보다 먼저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밥 맥코넬의 망상에서 비롯된다. 애초에 콜맨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줄 또 다른 자아에 불과했다. 그렇게 밥은 책상 아래에서 망상을 펼쳐간다. 하지만, 그렇게 슬플 수가 없다. 현실과 망상의 경계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가치를 정립하지 못한다. 머리통만 남겨둔 채 깨져버린 훌라걸처럼 바네사를 전신마비를 시켜야만 자신의 곁에 둘 수 있다는 사실을 망상 속에서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왕따에서 회사의 영웅이 됐지만, 하는 일이라곤 회장의 뒷치닥거리에 불과하다. 그게 딱 밥이 인식하는 자신의 수준이다.

그리고 그의 망상은 불안하고 초조하다. 이러한 행복이 오래도록 지속되지 못할 것이란 것도 예감한 듯 금세 깨어질 살얼름 위를 걷는 것처럼 밥의 심리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밥은 조그만 변화에도 민감하다.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행복이란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네사와의 관계에서나 회사 내에서의 위치에서나. 하지만, 밥은 이러한 불안요소이 자신 내면에 있음을 알지 못하고, 외부에서 찾아 나선다. 또 다른 공범을 찾아 다니는 것이다. 자신과 닮은.


하지만 망상 속에서 조차 망상을 헤매게 되는 밥은 결국 여섯번째 총알을 밟고 있는 그 위치로 되돌아와 자신의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총을 쥔 채 총알을 찾아나선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밥의 손에 쥐어진 총을 본 직원들을 아비규환이 되고, 사무실은 이내 아수라장이 된다. 그리고 밥은 드디어 실행에 옮기려는 듯 정수기 앞에 선 사무실의 마스코트에게 총을 겨눈다. 하지만 그녀와 눈이 마주친 밥은 차마 그녀를 쏘지 못한다. 망상 속에서 바네사가 물어왔을 때 대답했듯이 밥도 그녀의 눈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자살을 택한다.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묻지마 살인사건 이후에 주변 이웃들의 인터뷰를 통해 살인범은 그렇게 표현된다. 조용하고 말이 없었던 사람이었다고. <콰이어트 맨> 역시 밥을 통해 그들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얘기한다. 즉, 어느 누구도 밥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밥의 자동차만 빼놓고 빠르게 움직이는 현대사회의 모습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와 단절, 고독감을 얘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어느 누구라도 밥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는 개인이 아닌 사회를 향한 것이다.

9.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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