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 미 인>에 대한 주변의 평이 너무 좋아 기대가 컸던 탓인지, 그 만큼의 공간을 다 채워주진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보길 잘했다. <렛 미 인>은 로맨스라고 하기엔 스웨덴에 펼쳐진 하얀 절경이 소름끼치도록 창백하고 공허하다. 그리고 새하얀 눈 위를 물들인 붉은 빛의 선혈은 눈 부실 정도로 선명하다. 그렇다고 공포라 하기엔 오스칼과 이엘리의 창백한 얼굴과 투명한 눈망울에 그려진 서로의 모습처럼 서글프게 아름답다. <렛 미 인>는 내내 미묘한 이 경계를 오고간다.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다. 과연 오스칼과 이엘리가 나눈 감정은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홀로 남겨진 외로움을 채워주던 또 다른 자아의 심리적 투영체였을까?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언제나 혼자였던 외로운 오스칼과 인간 세상과 맞닿아 살 수 없는 고독한 운명체인 이엘리는 숙명적으로 끌릴 수 밖에 없었던 존재였을지 모른다. 그건 사랑이라기 보단 어쩌면 고독과 외로움을 공유해줄 존재로서의 집착 그 이상은 아니었을지.


어쨌든 그 둘은 서로의 존재를 알아가면서도 1차원적 감정을 억제하는 본능 이상의 것을 서로에게 보여준다. 인간으로써 당연히 느끼게 될 뱀파이어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포옹으로써 감내하고, 뱀파이어로써 당연히 느끼게 될 피에 대한 흡혈 욕구를 절제로써 표현한다. 거기까진 서로에 대한 신뢰였다. 오스칼은 이엘리가 여자든, 남자든, 사람이든, 뱀파이어든 어쨋든 좋았다. 하지만 이엘리는 오스칼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바로 호칸이다. 아버지처럼 보이던 호칸의 존재는 오스칼의 미래에 대한 표상이자 지칭점이다. 호칸은 이엘리를 위해 맹목적 사랑을 보낸다. 살인을 통해 이엘리의 생명 연장을 이뤄주고, 자신의 희생을 통해 이엘리의 존재를 철저히 숨긴다. 물론 이러한 행동조차도 호칸 스스로는 이엘리를 향한 사랑으로써 그 행동 자체에 행복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제3자의 시점과 상관없이.

하지만 그의 마지막 살인에 실패한 모습에서 알 수 있듯 허탈감과 함께 안도감에 빠진 표정이었다. 이는 그가 이엘리는 위한 행동에 앞서 선과 악 사이에 갈등했음을 나타낸다. 오스칼이 왕따를 시킨던 친구에 대한 복수와 감내 사이에서 갈등했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엘리에 대한 사랑 혹은 숙명으로써 받아들인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오스칼의 미래가 호칸이란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이엘리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날 받아줘" 초대받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던 것처럼 이엘리는 지극히 수동적으로 오스칼에게 청한다. 어쩌면 이엘리는 앞서 호칸이 그러했던 것처럼 오스칼이 그러해주길 바라고 있을 지 모른다. 이엘리를 위해 불나방이 될 운명을 택한 오스칼은 너무나 순진했다.

8.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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