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 홍당무>는 여태 보아왔던 코미디 영화의 전형이 아니다. 그래서 문제이다. 얼마나 관객을 납득시키고, 이해시킬 수 있느냐가 흥행의 관건이 되겠다. 여타 코미디 영화에서도 독특하고, 범상한 캐릭터는 등장했었다. 하지만,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은 단순히 익살스러운 웃음의 코드가 아니다. 얼필, 처연해 보이기까지 하고, 그녀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이렇게 못된 년도 또 없다. 아무튼 본격 왕따 민폐 캐릭터라 보면 무방하다. 이런 캐릭터의 범상함은 비단, 양미숙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야기의 주축을 이끌어가는 5명의 등장인물이 모두 다 독특한 캐릭터로 무장한채 준비도 안된 관객에게 노출된다.


사실 <미쓰 홍당무>의 큰 이야기 줄기는 뻔하다. 양미숙의 지랄발광을 보는게 전부이다. 여기서 지랄발광은 사전적으로 양미숙을 정확히 설명해준다. 지랄은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고, 발광은 '미친병의 증세가 밖으로 드러나 비정상적이고 격하게 행동함'이다. 양미숙은 과대망상으로 인해 사소한 행동에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하며, 마구 법석을 떨기 요란하고, 사리 분별도 못하고, 앞뒤 구분도 못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가끔 발광마저 한다. 전혀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을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선 마구 저질러 버린다. 시원하게 크게 소리내어 웃을 수가 없다. 그저 기가막혀 웃는다가 맞을 듯 싶다. 결말에 도달하는 과정까지 베어나오는 웃음 코드가 그러하다.


그래도, '미쓰 홍당무'의 최대 미덕은 결말에 있다. 아무도 '왕따' 양미숙을 동정하지도 않고, 연민을 느끼지도 않는다. 관객마저 그렇다. 그녀가 사랑스럽게 느껴질 여력마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곁에 두고 싶지 않은 그런 인물이다. 그저, 왕따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의 벽을 조금씩 누그러트릴 뿐이다. 희극적 인물을 최전선에 배치함으로써 현실 속에서의 냉대와 비하를 조롱하듯 풍자한다. "세상이 공평할 거란 기대를 버려!"가 가장 큰 교훈이랄까. 아무튼, 너무 유하지도 않게, 너무 강하지도 않게 적절한 결말에 도달한다.

7.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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