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 사는 남자 '수타'와 현실 속에 사는 남자 '강패'가 있다. 이 둘은 같은 몸짓을 하고 있지만, 그 경계가 극명하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수타'는 따라하기에 불과하고, '강패'는 카메라 앞에서 진짜을 해도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그게 영화와 현실의 경계이다. <영화는 영화다>라는 이 훈계조 혹은 명령조의 제목은 영화 속에 그대로 거칠게 드러난다. 영화 속 허구성과 현실 속 사실성이 영화 곳곳에 여과없이 노출되며, 아직도 덜 여문듯한 두 배우 소지섭과 강지환의 매력이 날것으로 잘 녹아있다.


처음 두 배우의 이름을 접했을 때, 스크린에서 만나기엔 다소 아쉬워보였던 느낌은 온데간데 없다. 그들의 거칠음은 오히려 생동감으로 다가와, 영화에 절묘하게 매치된다. 수타와 강패를 비추는 장면 장면은 마치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반영하듯 뚝뚝 끊기게 편집되어 매력을 발한다. 이 경계의 접점의 양극단에 있는 수타와 강패가 리얼을 가장한 허구속에서 만난다. 바로 영화이다. 처음 영화를 제안하는 옥상에서 둘이 대면할 때, 의상에서 드러나듯 강패와 수타는 흑과 백의 모습이다.


하지만, 영화 촬영이 진행되고, 서로 상대의 영역에 선망을 드러내면서, 서로가 상대에게 투영됨과 동시에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수타는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해주던 현실의 벽들이 하나 둘씩 허물어져감을 느끼고, 강패는 영화 속 대사를 읊어대며 영화 속 수타 흉내를 내다, 현실의 잔인성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결국 그 둘은 영화와 현실의 교차점에서 부딪힌다. 뻘밭에서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주먹질을 해대고 뒹굴며, 처음 만났을 때의 흑과 백의 색채는 보이지 않는다. 그 둘이 동일화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후, 그 둘은 자신의 위치, 양극단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현실과 맞이한다. 마지막 장면, 현실을 영화같이 바라보는 수타의 눈빛과 영화같았던 순간을 뒤로한 채 현실을 맞이하는 강패의 눈빛을 통해,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라 항변한다.


<영화는 영화다>는 자기 고백적 영화이다. 김기덕 감독이 만든 작품은 아니지만, 장훈 감독을 빌어 얘기한다. 김기덕 각본이 그러하다. 어차피 이것도 영화임에도, 영화 속에서 영화와 현실을 구분짓고 관객에게 얘기하는 참으로 독특한 구성이다. 관객 역시, 이것을 영화라 인지하면서도, 감독의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영화 속 액션을 리얼로 찍자는 제한 역시, 아이러니다. 합의된 리얼이기 때문이다. "컷"소리와 함께 액션은 멈춰질 것이 뻔하며, 죽음에 이르지는 못하고, 죽여서도 안된다. 그리고, 그러한 액션에 이르는 과정 역시 시나리오에 얽매여 있다. 이러한 합의된 리얼을 통해 영화는 영화일 뿐임을 보여준다. 김기덕 감독은 자신을 얽매여왔던 평단의 이중적 비판을 얘기하는 듯 하다.

8.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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