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다크 나이트>의 열기가 이제서야 좀 사그러드는 느낌이다. 생각보다 뒤늦게 본 편이지만, 그래도 그 몽롱함은 예상보다 오래갔다. 영화는 배트맨을 통해 실증적 증명을 한다. 선과 악, 그리고 이상과 현실에 대해. 다른 히어로물이 대체로 영웅의 활약상에 주목하고, 그들의 외향적 능력을 기술했다면, <다크 나이트>는 다른 측면에서 히어로를 바라본다. 과연 영웅은 존재해야 하는가.


배트맨의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을 시작한다. 범죄자를 처단하기 위해 법을 어겨야 하는 배트맨. 그 역시 법을 어기는 범죄자에 불과한가? 아니면 그는 범죄로부터 시민을 구해내는 영웅인가? 선과 악의 규정은 '절대적' 표현으로 규정할 수 없지만, 배트맨은 필요악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기에 만약, 배트맨이 아닌 진짜(?) 영웅이 존재한다면, 영웅의 몫은, 사회 정의 구현의 몫은 그 영웅에게 맡겨져야 하는 것이 옳다. 이러한 물음은 결국 브루스 웨인, 배트맨 자신에게까지 되묻는데 귀결한다. 언제까지 배트맨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이기에 고담시를 위해, 되도록 빨리 배트맨이 사라지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배트맨과 다른 히어로와의 차이점은 극명하다. 초능력자와 비초능력자. 배트맨은 초능력자가 아니다. 능력자이긴 하나,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형태가 아니다. 어쩌면 이러한 비초능력과 인간적 고뇌가 여러 히어로 중 놀란감독의 선택을 받게 된 배트맨만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여기서 감독은 하비 덴트와 조커라는 배트맨의 좌우, 양 끝단에 서 있는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고담시의 젊은 영웅, 새로운 희망 하비 덴트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회 정의를 실현하려 한다. 조금의 악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절대 선의 이상을 꿈꾼다. 하지만, 조커는 절대 악이라 할 수 있다. 범죄의 목적이 없으며, 파괴 자체가 본능이다. 그리고, 혼란과 공포를 즐긴다. 지켜야 할 것이 없기에, 두려운 것이 없고, 두려운 것이 없기에 가장 무서운 절대 악의 존재가 된다.


선과 악의 대립점엔 하비 덴트와 조커가 있지만, 진짜 대결은 하비를 지키고자 하는 배트맨과 그 마저 파괴하려는 조커사이에 존재한다. 잃은 것 없는 악과 지킬 것이 많은 선.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하비마저 선과 악의 대립점인 투페이스로 재탄생 된다. 하비의 동전처럼 선과 악은 하나의 동전 안에 동시에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동전은 모든 인간이 하나씩 들고 있다. 확률은 반반이다. 인간에게 있어 절대 선과 절대 악은 없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상대적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동전을 하늘 높이 던져서 앞면과 뒷면 중 어느 것이 나올 것인가를 운명에 맡기느냐가 아니라, 직접 그 동전을 뒤집을 수 있는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절망 속에 나약해진 하비는 자신의 행동의 상대적 선과 악을 운에 맞기는 운명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배트맨은? 조커는 배트맨에게 서로는 닮았다고 얘기한다. 물론 그 지향점은 다르지만. "네가 나를 죽일 수 없는 것 처럼, 나도 너를 죽일 수 없지."라고 말하는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선과 악의 존재가 그러하다. 물론, 사회 구성원으로써 사회의 제도권 안에서 지켜야 할 규범와 법규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선이라 규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질서를 부정하는 범죄자 역시 악이라 규정할 수 없다. 배트맨은 그저 선과 악의 기로에 서서, 즉, 제도권 밖에서 정의를 수호하는 다크 나이트일 뿐이다.


배트맨의 굵직한 음색이라던지, 조커의 쩝쩝거림과 한 박자 쉬고 치는 대사라던지. 152분 내내 지루하지 않게 간결한 호흡으로 관객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도록 잘 마무리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 동안 멍하게 스크린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그 여운, 그리고 상황마다 적절하게 배치되어 청각을 옥죄여 오는 음향은 압권이다. 어느 것 하나 흠 잡을 데 없이 깔끔하게 잘 빠졌다.

9.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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