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에 'SHOW 희망프로젝트 - 반값다! 서해야'에 당첨되어 몽산포 해수욕장에 다녀왔다. SHOW 희망프로젝트는 서해안 살리기의 일환으로, 당첨된 사람은 몽산포 해수욕장 야외 캠핑장에 준비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가족텐트, 식수대, 샤워장, 선텐베드, 파라솔 등이 준비되어 있어, 옷가지와 먹거리만 준비해 가면 된다. 뿐만 아니라 KTF에서 준비한 갯벌체험, 해변영화제, 비치발리볼, 캠프파이어, 페이스페인팅 등 까지도 즐길 수 있다. 매 회수당 2박3일 일정으로 총 9회에 걸쳐 진행되는데, 난 18일부터 20일까지에 해당되는 8기였다.

나열된 혜택에도 불구하고, 가기 전부터 왠지 기분이 꺼림직했다. 일단, 울산에서 몽산포까지 너무 멀었고, 무엇보다 18일부터 서해쪽에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번의 갈등 끝에, 내 기억엔 한번도 서해를 가본적이 없는 것 같아서,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은 편치 않았다.

울산에서 동대구로 가는 열차를 2시간 타고, 동대구에서 대전으로 가는 KTX를 1시간 탄 뒤, 대전에서 태안으로 가는 버스를 2시간 30분 타고, 태안에서 몽산포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15분 타고서야, 드디어 몽산포 해수욕장에 도착할 수 있다. 가는 내내 비는 그칠 줄은 몰랐고, 점점 더 비바람은 거세어져만 갔기에, 혹시 일정이 취소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워 행사 본부로 연락을 취했지만, 일정대로 진행한다는 얘기뿐이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도착한 몽산포 해수욕장은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분위기가 너무나 침울했다. 휴가철이 지난 시점이기도 했고 평일이기도 했지만, 날씨가 좋지 않은 탓에 참여 인원이 너무나 적었다. 다 합쳐도 20팀이 될까 말까 하는 정도였다. 준비된 캠핑장이 레드, 블루, 그린으로 나눠져 있었지만, 레드도 다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였다.


뭐, 적으면 적은대로 놀면 되니까 그려러니 했는데, 젠장! KTF에서 진행하기로 했던 첫째날 일정이 날씨 사정으로 인해 모조리 취소됐다는 것이다. 물론, 날씨가 우중충하긴 했지만, 그렇게 다 모조로 취소해버릴 만큼의 날씨가 아니었기에 아쉬웠다. 할 수 없이, 시커먼 밤하늘에 물이 빠져나간 해변을 거닐 수 밖에 없었다.


밤새 우려했던 태풍이 잠잠히 지나간 다음날은 아침, 날씨가 너무나도 좋았다. 내심 어제 취소됐던 일정을 오전에 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얘기는 없었다. 3시부터 둘째날 일정이 진행된다는 얘기만 있었다.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갯벌에 호미와 맛소금을 들고 가서 맛조개를 잡기로 마음 먹었다. 물이 다 빠지고 나면, 10 ~ 15분 정도를 바다쪽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 대충 좋은 자리를 잡은 뒤, 호미로 흙을 적당량 긁어내다보면 타원형의 구멍이 보인다. 그 구멍에 맛소금을 뿌리면, 맛조개가 알아서 쏘~옥 하고 튀어 올라온다. 그 때, 잽싸게 잡아 올리면 된다. 타이밍을 놓치면 다시 들어가버리니깐 잽싸게 행동해야 한다. 아, 이론은 빠싹한데, 왜 이리 잡히지가 않는지. 잘 잡는 아저씨 옆에서 구경만 실컷 하고, 우리는 그 옆에서 게만 잡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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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3시. 여전히 둘째날 일정에 대해선 말이 없다. 4시가 되어도 어떠한 코멘트도 없길래 물어보니, 참가 인원이 너무 적어서 6시 30분으로 미뤄졌단다. 물론, 대단한 행사나 이벤트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 멀리서 비싼 차비까지 들여가며, 긴 시간을 버스와 열차를 갈아 타면서까지 온 것은 일정대로 진행한다는 운영본부의 확답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제와서 날씨가 안 좋다, 참가 인원이 없다는 얘기만 늘어놓다니. 그럴꺼면 애초에 전화했을 때,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던가. 계산을 따져보면, 몽산포까지의 왕복 차비는 가까운 남해나 동해 쪽 펜션에 묵을 수 있는 비용이다. 그럼에도 수고스럽게 여기까지 온 것을 생각하니, 이러한 진행에 짜증이 났다. 아무튼, 거창하게 설명해놨던 홈페이지와 달리 분위기는 너무나 썰렁했고, 반응은 너무나 차가웠다.

그리고 6시 30분. 정말 조촐하게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물풍선 받기, 훌라우프 돌리기, 팔씨름, 노래자랑 따위의 것들이 진행되었지만, 그다지 흥미롭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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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진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좋던 날씨도 밤이 되니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결국 하는 한마디 "날씨가 좋지 못해서 캠프파이어는 취소입니다." 이거 사람 데려다 놓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자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적고 하니, 대충 간단하게 끝내자는 생각이었나 보다. 그 추운 날씨에 적은 인원은 점점 줄어만 갔다. 차라리 날씨 좋았을 낮에, 갯벌체험이나 비치발리볼 같은 것을 했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무튼, 무리에서 빠져나와 서해안 바닷가만 실컷 걸었다. KTF 덕분에 서해안에 나쁜 기억만 남게 되어, 다시는 고생하면서 서해안까지 오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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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11시, 물이 빠지는 시기에 맞춰 다시 바다로 나왔다. 호미와 맛소금은 들고 있었지만, 맛조개를 잡는다는 생각보다 길게 늘어진 갯벌을 한번 더 걷고 싶어서 였다. 찬바람과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맛조개를 잡겠다고 나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지나가는 게 따위나 잡던 우리는 그물에서 물고기와 게, 조개를 잡아 올리는 지역 사람들을 만났다. 낮에 물이 빠졌을 때 그물을 쳐놨다가 밤에 물이 빠져 건져가는 듯 했다. 이런 광경은 또 처음이기에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그물 끝자락을 가르키며, 저기에 걸린 게나 물고기를 가져가란 것이다. 가서 보니 죽은 듯이 누워있는 물고기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죽은 것이 아니었다. 툭툭 건들이면, 팍딱팔딱 뛰는 것이 산 것이 분명했다. 작은 녀석들이 많았지만, 꽤나 큰 녀석들도 있었다. 얼씨구나 하면서 잡아 들었다.


횟감으로 써도 충분할 만큼 큰 고기였다. 하지만 원래 회를 안 먹기에 다른 사람한테 넘겼지만, 나름 재밌었다.

동해와는 다른 긴 모래사장과 다소 탁한 바닷물의 서해바다. 낮과 밤을 사이에 두고 신기할 정도로 많은 양의 물이 빠졌다가 들어오는 진기한 경험. 그리고 갯벌에 조개와 게들. 언제 다시 또 와볼런지 모르지만, 서해안의 매력을 마지막 날 밤에 듬쭉 만끽했다. 마음 한켠에 KTF에 대한 원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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