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문화제였다. 문화제는 집회가 되었고, 집회는 다시 시위로 바뀌였다. 이런 촛불시위가 며칠 째 이어지면서 변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순수성을 잃었다는 얘기다. 폭력시위라면 참가하지 않겠다며 독설과 함께 혐오를 드러내는 이들도 있고, 그럴 줄 알았다는 조롱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수구꼴통 찌라시에선 촛불시위의 변질을 폭력시위로 규정한 채 경찰과 전경에게 연민마저 보낸다.

80년도도 아닌 08년도에, 얼굴을 향해 물대포를 쏘아대고, 아무런 꺼릴 것 없이 소화기를 분사해 댄다. 대낮에 방패에 찍힌 채 피를 흘리며 실려가는 일은 다반사고,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군화발을 피해 버스 밑으로 숨어 들어가는 일까지 생겨났다. 수구꼴통 찌라시는 이런 행위를 '과잉'이란 수사로 피해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텍스트화 한다.

폭력시위란 표현은 만연하지만, 과잉시위란 표현은 찾아 볼수 없다. 과잉진압이란 표현은 만연하지만, 폭력진압이란 표현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비단 수구꼴통 씨라시들만의 화법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체제 속에서 전경의 폭력엔 관대한 반면, 시위대의 폭력엔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증거이다. 폭력시위에 대한 과잉진압인가? 과잉시위에 대한 폭력진압인가?

이러한 '폭력'과 '과잉'에 대한 표현의 강도는 엄연히 다르다. 폭력(暴力)의 사전적 정의는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이고, 과잉(過剩)은 '예정하거나 필요한 수량보다 많아 남음'으로 정의된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현재의 상황은 촛불시위가 계속 되면서 열기가 과열되고, 흥분을 조절하지 못한 몇몇의 참가들이 '과잉시위'를 한 것이 될테고, 그 과잉시위에 대한 전경들의 대처가 군화발과 방패, 곤봉과 같은 수단으로 '폭력진압'을 한 것이 맞다. 하나의 표현과 수사는 그 형태와 성질을 규정 짓는다. 시위대가 연일 비폭력을 구호처럼 외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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